오늘은 에스겔 21장15절에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살륙을 위하여 날카로왔도다." 에서 "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칼" 이라 하심은 "양날의 검" 하듯이 사람의 마음에서 하등의 쓰잘데기 없고 쓸모 없는 것 곧 못됐고 나쁘고 악한 마음과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의 마음 가죽(렘4:4)을 베어내는데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겠지만 마음 가죽을 베어내는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 그 칼은 우리 자신을 날카롭게 살륙하여 멸망과 파멸과 사망의 길을 걷게 하는 "칼" 이 되며 이 "칼" 을 에스겔서 9장1절에서는 "살륙하는 기계"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멸망과 파멸과 사망을 향하여 불나방처럼 달려가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 사건들을 성경 66권에서 "칼" 을 통하여 기록하여 알려주신 이유는 에스겔 21장19~20절에 "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에 이르는 길과 유다 견고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을 그리라." 하시면서 24~25절에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너희의 건과(그릇된 실수)가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끝 때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언제든지 지나간 역사는 그 지식만을 가르친다면 그저 하나 밖에 모르는, 일부분만 헤아리는 것 뿐이며 다만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남아있고 이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고 끝내시는 세상 끝(롬9:28),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고전10:11)의 목적으로, 생명을 주는 교훈(롬15:4)으로 주신 것이니 우리 사람이 살아오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기를 사소하게 생각하며 비방하고 훼방하기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사나워져서 물고 뜯고 싸우고 함부로하기를 거침없이 하였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미워하시며 "칼" 로 도륙하고 살륙하게 하시는 죄요 악이요 반드시 우리 스스로가 "칼" 로 베어 내어야 할 허물로써 죄와 악을 베어 낼 수 있는 "칼" 은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아 연합하여야 할 "십자가의 죽으심(롬6:5~10)"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 5장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하시면서 25절에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원히 거처로 삼으실 집이요 성전(고전3:16)이며 그러한 사람,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예루살렘 성" 이 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아무에게나 거처로 삼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요14:15,23)라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며 계명(약2:8~9)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한 집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 한 우물에 쓴물 단물을 동시에 낼 수 없는, 한 몸에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듯 반드시 죄와 악에서 벗어나야 하며 벗어나서 이겨내는 도(道) 즉 그 방법을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시고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십자가의 고난" 과 "죽으심" 이며 이로써 사람의 죄 또한 사하여 주시리니 죄 사함(엡1:7) 곧 구속(구원)이 되는 것이며 하지만 우리 사람의 허물과 실수와 과오와 잘못이 이 좋은 길을 물리쳤고 막았던 지나간 역사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 성경 66권이며 이는 또한 세상 끝,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교훈으로써 계시록 6장1절에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 4절에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동안 평안하고 화평하고 화기애애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하나" 만 알고 "둘" 은 몰랐던 때였기 때문이니.....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성경 66권을 주실 때에 누구나 읽어보면, 들여다 보면 그 뜻을 헤아려 이해할 수 있도록 온전하게 참 뜻, 참 형상으로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아리송송, 긴가민가하게 되도록 어디에는 다른 모양인 이상(사1:1)으로, 또 어디에든 에둘러서 비유로(호12:10), 또 어디에는 그림자만(히10:1)으로 보이셨으며 이를 하나만 아는 초보라, 둘 중에 하나 즉 일부분만 보이신 "부분적"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그러나 언제까지나 하나만, 초보만, 일부분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온전한 참 뜻, 참 형상, 둘 다 밝히(요16:25)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는 때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시대를 분변하고 구분하는 것이며 그 때에는 마냥 평안할 수도, 화평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을 믿었다면 마음 가죽을 베어내려고 노력할 것이요 하지만 여전히 체면과 자존심이 중요하여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행한다면 그 칼로 다른 사람의 마음만 후벼파고 찌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도륙하고 살륙하는 "칼" 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시편 37장7~9절에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하시면서 14~15절에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지리로다." 하시는 것처럼 살아가다 보면 왜 마음에 안드는 일이 없겠는가?, 못마땅한 일이 왜 없을까? 그러나 그로 인하여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분노를 일으켜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물고 뜯고 싸우고 함부로하게 되면 이 또한 하나님 앞에 죄와 악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도륙하고 살륙하는 "칼" 에 의해서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며 오직 그러할지라도 죄와 악을 절제(고전9:25)하고 제어(벧전2:1)하고 다스릴 줄(창4:7) 알아서 죄와 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그리스도와 합하여 본받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생명(고전15:23)과 안식(히4:8~9)과 구원(히5:7~9)의 길을 인도함 받으리니 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전하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요 또한 이를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은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을 인하여 처음 익은 열매(계14:4)들로 거쳐를 삼아서 영원히 함께 거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끝내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