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9장60절에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 에서 "죽은 자"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죽은 자" 라 하심은 질병이 되었건 사고가 되었건 노환이 되었건 자연 재해가 되었건 이러저러한 이유로 목숨을 잃은 상태 즉 "사망한 것" 을 의미하며 중요한 것은 성경 66권에서 알리고자 하시는 "죽은 자" 는 그러한 "사망" 을 뛰어넘어서 더 고차원의, 4차원의 "죽은 자" 에 관하여 말하고자 하시는 것으로써 로마서 7장7~9절에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6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을 주신 것은 그 율법 안에서 기록하고 있는 (십)계명을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요 그런데 율법이 나타나기 전, 이르기 전에는 사람이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죄인 줄, 악인 줄 알지 못하고 행하여 왔으니(롬5:13)..... 다시 말해서 (십)계명에는 "탐내지 말라." 이외에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등등등 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으면 되는데 우리 사람은 원하는 선(善)으로는 행하지 않고 자꾸만 죄와 악(롬7:18~19)을 행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즉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는 살아나고 우리 자신은 온데간데 없이 죽었으니 이를 계시록 3장1절에서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하시는 것처럼 비록 살아서 움직이고 활동하고는 있지만 우리 자신의 뒷켠에는 죽은 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에스겔서 18장20절에서는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하시면서 23절에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신체(몸)의 죽음(사망)을 논하기에 앞서 몸을 죄대로 악대로 움직이도록 명령을 내리는 마음과 생각 곧 영혼의 죽을 것을 의미하여서 영혼이 죽으면 영혼이 거처하는 집 즉 몸(신체) 또한 "죽은 자" 가 되며 사망(롬6:23)에 이르게 되리니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은 마치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에 깨트려 버림이 목적이 아니라 귀하고 훌륭하게 사용하기 위함인 것과 같이 하나님도 우리 사람을 죽게 하시려 하심이 아니라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 있는 "생명" 으로 들어가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6장7~8절에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하고 쓰고 있듯이 무엇보다 죄에서 벗어나기를, 이겨내기를(고전9:25)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힘쓰고 애쓰며 노력하여야 하며 이전에는 죄는 살아나고 나는 온데간데 없이 죽었지만 이제는 죄에서 벗어나 죄가 죽어야만이 살아나게 되리니 이 본보기를 2000년 전에 오셨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 이며 그 본과 자취(벧전2:21)를 좇아서 따라 행할 때에, 지켜 행할 때에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 곧 생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원하시는 참된, 참 뜻의 "믿음" 이니 그러한 그리스도의 본보기를 좇아서 따라 행하였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소망은 "구원(롬5:9)" 이요 "구원" 은 죄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어 죄로 말미암아 사망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을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어야(롬6:10) 하는 "십자가의 죽으심" 이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사도 바울의 고백이 이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이는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하리니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끝(롬9:28)내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에 많은 아들(히2:10) 즉 처음 익은 열매(계14:4)를 찾고자, 얻고자 하심이요 그런즉 고린도전서 15장31절에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매일 매일 죄에 대하여 죽으려는,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4장17절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모든 걸 다 떠나서라도 우리 사람은 저마다 선한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 선한 양심을 좇아서 말도 하고 행동도 하려고 하는 것이며 그러나 문제는 선한 양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수라 백작처럼 마음 한 귀퉁이에는 악한 것을 꾀하는(전7:29) 악한 양심도 함께 있기 때문에 온전히 항상 선으로, 의로 행하면야 정말 좋겠지만 때로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하여서 미우면 미워하게 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게 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되고 못마땅하면 사나운 맹수처럼 물고 뜯고 싸우게도 되며 나의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기준,관점)을 위하다보니 상대방을 잘라버리거나 꺾어버리거나 밟아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이 "죄" 라는 것이며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선한 양심을 죄에게 팔아버리지(롬7:14) 말고 항상 정신 차리고 조심하고 경계하여서 죄에 대하여 무각감하고 무뎌지고 둔하여져서 우리 자신을 이러한 방탕에 방임(엡4:19)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