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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진저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누가복음 11장44절)

교훈 안에 2022. 10. 21. 19:02

오늘은 누가복음 11장44절에 "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에서 "화(禍)"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화(禍)" 라 하심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재앙을 의미하며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앙은 갑작스런 사고, 뜻하지 않은 자연 재해, 무기력하게 만드는 여러 질병과 암 그리고 굳이 이러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 사람은 강건해야 7, 80(시90:10)이요 90살만 넘으면 노환으로 기력이 쇠하여져서 서서히 죽음(사망)에 가까와지니 어찌 재앙이 아니라고, "화(禍)" 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중요한 것은 사람을 자꾸만 죽음(사망)으로 내모는 재앙의 "화(禍)" 가 어디 이뿐이랴. 계시록6장4절에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하시는 것처럼 계시록 5장에서 다니엘 때부터 인봉(단12:9)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인봉함에서 떼고 보니 모든 것이 좋아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화평이 제하여져서 서로 죽이고 또 죽이는 큰 칼을 받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며 이는 진짜 "칼" 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 상처를 주는 못됐고 악한 말, 후벼파는 모질고 독한 말을 "칼" 에 빗대어 비유로 하신 말씀이며 그러한 "칼" 로 다른 사람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되니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뻔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그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화평하지 못하여 그 속이 시끄럽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자신의 속에서 해결해야 할 것을 뜻대로 안되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분노하게 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하게 되며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갑질하게 되며 이러한 미움은 또 다른 보복을 낳게 되고 보복은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되고 복수는 또 다른 테러를 낳게 되고 테러는 또 다른 전쟁을 낳게 되어 원수처럼 물고 뜯고 싸우게 되며 또한 이러한 전쟁으로 인한 죽음 곧 재앙의 "화(禍)" 가 어디 어제 오늘 일이랴. 인류가 있은 이래로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전쟁으로 인한 재앙의 "화(禍)" 는 변함없이 우리 사람들을 괴롭혀 왔으며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재앙의 "화(禍)" 를 부르는 갈등과 대립과 분쟁과 다툼과 싸움과 보복과 복수와 테러와 전쟁은 일어나고 있고 죽음(사망)을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계시록 8장13절에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계시록 5장, 6장을 걸쳐서 인봉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인봉함에서 떼시므로 이제는 그 온전한 참 형상(실체)의 뜻을 전하고 알리기 위하여 그 목소리를 나팔(사58:1)처럼 날려야 하리니 그러나 그 뜻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축복과 평화로다." 가 아니라 화평은 커녕 오히려 재앙의 "화(禍)" 만 있을 것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다는 것이 문제이니 마태복음 10장34~36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모든 것이 평화롭게 변할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람의 못됐고 나쁘고 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꼬이고 부정적이 사나운 심성을 죽이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존심 싸움은 계속될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시집살이 시키듯이 불협화음으로 원수처럼 지내게 되기 때문에 먼저는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롬6:5~11) 다시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여야 하리니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 이며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완전히 이루시고 끝(롬9:28)내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며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화평이 오게 되리니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도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여서 나이로, 성별로, 지위(자리)로, 재력으로... 등등등 이러한 것을 믿고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들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맛대로 조정하려 한다면 결단코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며 오직 죽음의 재앙의 "화(禍)" 가 기다리고 있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16장1절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시는 것처럼 계시록 전장의 말씀은 다른 모양 곧 이상(異狀)의 극치, 빗대어 에둘러서 표현하신 비유의 극치의 말씀으로써... 그 목소리를 나팔처럼 날려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전하였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게 되며 이는 노아 때나 롯 때나 모세 때나 다윗 때나 솔로몬 때나 분열 왕국(남유다, 북 이스라엘)시대 때 즉 시대만 바뀌었을 뿐,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동일한 일이요 동일한 사건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장소와 상관없이 항상 동일(벧후3:7)한 말씀이었기 때문이며 계시록 18장4절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시면서 8절에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계시록 18장에서는 "큰 바벨론" 이 등장하는데 이는 "음녀(계17:1~5)" 의 이름이며 또한 이 "음녀" 는 7머리 10뿔의 해괴망측한 짐승을 타고 있으니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말씀의 씨(눅8:11)를 가진 "남자" 의 입장으로 또 그 말씀을 받는 우리 사람들을 "여자" 에 빗대어 표현할 때에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음녀" 가 되는 것이니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분명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도 정작 지켜 행하라고 주신 계명(눅10:25~28)은 지켜 행하지 않고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서슬퍼런 칼을 입(말)과 몸(행실)에 지니고 다니면서 사람답지 않는 행동만 한다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짐승이 되며 꼬리가 아홉개 달린 짐승이 아니라 교만의 끝을 보여주는 머리가 일곱개 짐승이니 마치 괴물과도 흡사한 것을 기록하여 주신 것으로써 성경 66권은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지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다른 사람에게 눈총을 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니 계속하여 다른 사람들을 아래로 보면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면서 못마땅하면 미워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성경 66권에서 기록하신 죽음의 재앙의 "화(禍)" 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으며 그것이 "답정너" 하듯이 우리 자신이 된다면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으니 "걸어다니는 무덤" 이나 다름없고 무덤인지 알 수 없는 평토장한 "무덤" 과도 같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