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레미야 3장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하시면서 5절에 "네가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에서 "욕심(慾心)"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인즉은 1절부터 5절까지 쭈욱 읽어보시면 세상에서도 사람(남편)이 이런저런 이유로 즉 여자(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외도를 저질러서 거기다가 남의 남자의 아이(자녀)까지 임신을 하게 된다면 그 여자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반문하시면서 이스라엘(여자) 곧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이 하나님(호2:16) 앞에 이런저런, 이러저러한 많은 죄를 잉태(약1:15)하여 낳고 악이 장성하여 행함이 마치 남편 있는 여자가 행음(간음)함 같아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받아줄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하심이며 또 그 행음함의 본질이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욕심" 이었음을 알리고자 하시는 내용의 말씀으로써..... "욕심" 이라 하심은 어떠한 것을 지나치게 탐내거나 그 탐낸 것으로 마음껏 즐기고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하며 그런데 이 세상에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그 욕심을 성취하고 이루기 위하여 한 가닥 성깔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문제는 야고보서 4장1~2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하시는 것처럼 너도나도 다 한 가닥 욕심이 있기는, 한 성깔이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못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배려하거나 양보하지 못한다면 그 욕심으로 말미암아 항상 시기 질투를 하게 되고 시기하는 마음은 점점 자라서 미워하게 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점점 자라서 비방(흉보고 욕함)하게 되고 비방하는 마음이 자라서 보복 복수를 하게 되고 복수심이 자라 맹수처럼 사나워져서 물고 뜯고 싸우며 치고 박는 전쟁을 하게 되기 때문에 전쟁은 잘 알고 계시듯이 "너 죽고 나 살자." 하듯이 어느 한 쪽은 살아남는 방법이 아니라 둘 다, 양쪽다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지름길이므로 그 어떠한 것 곧 욕심의 주체가 물욕이나 식욕과 같은 욕심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즉 심욕(心慾)" 에 관한 것임을 전하고자 하시는 것이며 일례로 에덴 동산에 있던 옛 뱀(간사한 사람)이 사람의 마음(아담,하와)을 탐내어 호리고 꾀여서 결국 흙(사망)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사건은 그저 "그런 일이 있었어!!" 하면서 아직도 역사적 사실로만 가르치고 전한다면 몽학 선생 아래에 있는 그 성도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난 시간에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여는 키 포인트 첫 번째를 말씀드렸지만 상대방(남)을 손가락질 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어서 더럽고 추한 것을 깨끗하게 씻으라고 기록하여 주신 말씀이므로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사람의 마음 만큼은 변한 것이 없고 시간(세월)만 흘렀을 뿐, 공간(장소)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 사람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생명의 보호하심(잠6:20~22)을 얻지 못하고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여전히 사망(죽음)의 바퀴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파리목숨에 불과한 생의 바퀴를 돌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미가서 7장2~4절에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하시는 것처럼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을 구해주는 의인이나 도와주는 선인이 얼마나 많으며 착한 일을 남몰래하는 정직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선인이 끊쳤고 정직자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또한 어느 누구랄것 없이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며 못마땅해지면 사나운 맹수가 되어서 물고 뜯고 싸우며 함부로(무시,업신여김)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고 있으며 또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자신의 유익(입장,처지) 앞에서 자신의 이익(성공,성취)을 위하여 상대방을 잘라(제거해)버리고 꺾어버리고 밟아버리는 악을 부지런히 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우리 사람을 무조건 의인, 선인이라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이며 마냥 정직자라 치켜 세울 수 없는 이유이니 이 세상에 원수 같은 사람은 없지만 원수 같이 미워지고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해지는 것은 어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 즉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에서, 어떤 모임(동아리,동호회...등등등)에 있는 그 집안 식구(마10:34~36)가 자신의 힘(지위,나이,재력,학력...등등등)으로 자꾸만 시어머니처럼 시집살이를 시키려 하기 때문에, 이해하거나 존중해주지 못하고 자꾸만 간섭을 하고 자신의 의견(뜻,생각)을 피력하여 관철하려 하기 때문에 이러한 욕심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시는 것으로써 결국 욕심을 절제(고전9:25)하고 제어(벧전2:11)하고 다스릴(창4:7) 줄 아는 자라야 비로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 말할 수 있으니 갈라디아서 5장16~17절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는 "성령" 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여 가신 후 오순절 다락방에서 방언이 터져나오게 했던 "성령" 만을 떠올리지만 논리적으로 "성령" 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영(靈)" 을 의미하며 보이지 않는 영(靈)을 보이는 말씀(요6:63)으로 드러내고 나타냈으니 말씀이 곧 "성령" 이지만 중요한 것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성경책을 펼쳐든 곳이라면 다 "성령의 집" 이 되고 또 맹목적으로 믿게 되기 때문에 말씀의 핵심은 모세의 때에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에 기반하였고 또 율법의 핵심은 열가지 계명 곧 "십 계명" 에 있으며 그리고 십 계명의 최고한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되 원수까지 사랑하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심에 있으므로 이를 지켜 행할 때에 사망에서 생명(신8:1~2)으로 옮겨주시는, 건져주시는 "구원" 을 받게 해주시겠다는 영원한 약속(언약)이 온전하고 완전한 "성령" 으로써 이 성령이 우리 사람을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이보다 더 은혜로운 스승이 어디에 있을까? 이를 "보혜사 성령" 이라 하니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똑같을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그 마음에 이런저런, 이러저러한 욕심이 있고서야, 이러한 육체의 소욕이 있고서야 어찌 성령을 좇아서 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이를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사람의 욕심과 또 욕심에서 비롯된 죄와 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을 겪으셨으며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 사람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요구대로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앞서서 보이신 것이므로 당연히 믿는 자라면 그 본과 자취(벧전2:21)대로 좇아서 지켜 행할 줄 알아야 하며 이로써 구원의 근원(히5:9)이 되셔서 우리들로 구원으로 가는 길을 터서 열어주셨고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 속한 자(계14:4),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3:27)를 찾고자, 찾아서 얻고자 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17~20절에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함과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연쇄 살인마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은 한 번이 어렵지 한 번이 두 번되고 두 번이 열 번되고..... 그러나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니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열 번, 열 번이 스무 번, 스무 번이 백 번이 되고 이제는 둔해지고 무뎌져서 감각 없는 자가 되는 것은 죄와 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이방인들 곧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쳐도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백성,성도,자녀)들이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똑같이 말하고 행동한다면 어찌 그 더러운 지체(말,행동)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그리스도의 행하신 본보기를 욕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꼭 재산을 탕진하고 술에 쩔어서 사는 것만이 "방탕" 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 행할 계명들에 관하여 6000년을 걸쳐서 기록한 말씀(성경)이 있는데도 이를 사소하게 여기고서 버젓이 욕심껏 마음껏 가책없이 거침없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보복,복수)하고 사나워져서 물고 뜯고 싸우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그야말로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고 있는 것이니 시편 106편13~115절에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물론 아쉬운 일도, 안타까운 일도, 슬픈 일도 겪게 되지만 그런 속에서도 감사하게, 행복하게, 기쁘게, 즐겁게, 예쁘게 살 수 있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 행복한 마음, 기쁜 마음 그 자체가 "하나님" 이기 때문이며 그러나 이를 어린 아이들처럼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뒤돌아서면 깜박하며 거기에 만족할 수 없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거머리에게 있는 두 딸(잠30:15)마냥 "주시옵소서. 주여 주여!!"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오직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서 무한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 밖에 없는데 또 생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 악에서 벗어나 주신 계명(눅10:25~28)으로 지켜 행하는 것 밖에 요구하시는 것이 없는데 결국 그 욕심을 성취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등쳐먹기도 하고 폭행하기도 하며 이런 죄악이야 징역형으로 다스린다고 하지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도의적인 죄와 악은 당장에 죄에 대한 벌이 없음을 인하여 대담하게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것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호리고(가스라이팅) 훔치는(그루밍) 도적질을 하니 "도적질하지 말라.(신5:19)" 하신 계명을 어긴 것이요 또 모든 계명은 비록 열 개 밖에 되지 않지만 열 가지 계명이 다 연결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를 어기면(범하면) 다 어기는(범한) 것(약2:10~11)과 마찬가지이므로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뭐 이래저래 우여곡절 끝에 그 원하는 욕심대로 얻게되고 성취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그 영혼을 파리(말라 비틀어져서 죽어감)하게 됨과 무한한 생명을 맞바꿀 만큼 어리석거나 미련한 자가 되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 사람에게 아담을 필두로 "욕심" 에 관한 경고의 말씀들을 기록하신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