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가복음 20장17절에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에서 "머릿돌"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머릿돌" 이라 하심은 모든 만물에는 고유한 이름들이 있고 사람과 친근하고 반려하는 동물이나 식물에는 또 그 사람이 의미있는 이름을 부여하기도 하며 또한 사람도 그 사람을 말해주는 이름이 있듯이 건물에도 지어 올릴 때에 그 건물을 언제(년월일) 어떠한 목적과 이유로 세우게 된 것에 관하여 써 놓은 돌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머릿돌" 이며 이를 다른 말로 "기초석(사28:16)" 이라고도 하며 하나님 앞에 지어져 갈, 건축할 건물은 오직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교회,성당) 밖에 없으니 그 돌 하나, 하나는 우리 사람들(성도,자녀,백성)이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 22~23절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하시는 것처럼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하심은 참 형상(실상,실물,참뜻)은 따로 있지만 때가 이르기 전에는 감취어져 있었고 숨겨져 있었던 약속(예언)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며 우리 사람을 집이요 성전(고전3:16)에 빗대어 비유로 표현할 때에 그 한 돌, 한 돌 역시 "사람" 인 것이며 그 중에 머릿돌, 기촛돌이신 "그리스도" 에 대하여 하신 말씀으로써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고 나타나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시대시대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갈 사람들(성도,자녀,백성)을 가르치는 자들(율법사,바리새인,제사장,사두개인... 등등등) 곧 건축자(목사,전도사,선교사,신부님,수녀님... 등등등)들이 있기 마련이며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5장1~3절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언짢으면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취약한 사람이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는 자들 곧 건축자들 역시 그러한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사람 가운데서 취하였기 때문에 건축자들 스스로도 자신의 죄와 악을 위하여 속죄제(죄와 악에 대한 용서를 구함)를 드려야 하지만 "중이 제머리는 못 깎는다." 고 오히려 그 지위(자리)를 이용하여 부와 명예와 권위(위력)를 축적하여 건물을 짓듯 쌓아 올리며 체면과 자존심만 강해져서 뜻대로 마음대로 안되면 잘라버리고 꺾어버리며 못마땅하고 언짢아지면 밟아버리고 넘어뜨리는 죄와 악을 행하게 되며 더욱이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기는 우리 사람의 마음(마15:18~20)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짐승(어린양,염소, 송아지... 등등등)을 잡아서 희생 제물로 바친다고 하여서, 또는 땅의 소산(곡물,과일,채소,헌금... 등등등)을 드린다고 하여서 사람을 부정(더럽게)하게 만든 마음 속에 있는 죄와 악이 없어지고 사라질까? 하는 것으로써 이러한 것으로는 양심상 온전케(히9:9~10) 즉 죄와 악을 없이하지 못하리니 다만 모세의 율법에서 기인한 형식(예의)과 절차(도리)를 갖추어서 그 순서대로 예식(제사,예배)을 올리는 육체의 예법에 불과하고 이 육체의 예법대로 1년이 아니라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아니라 자그마치 몇 1000년 동안 중언부언, 무한반복 해오다보니 이제는 죄와 악에 대하여 사람의 감각이 무뎌지고 둔해져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예식(제사,예배)만 올리면 죄와 악에 관한 용서 즉 죄사함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여기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죄와 악은 어디까지나 우리 사람 스스로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몫이고 그 때에서야 비로소 "구원(엡1:7)" 을 기대하고 소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11~12절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장막" 은 우리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그에 따른 희생 제물(짐승의 피와 살)이나 예물(곡물,헌금)을 드렸던 곳으로써 이 장막을 오늘날에는 "교회, 성전, 성당, 예배당" 이라 표현하여 부르고 있으니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행7:48~49) 곧 장막이나 교회나 성당이나 성전에 거하지 않으시며 오직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 그 중에서 우리 사람을 온전한 장막 곧 집으로, 성전으로, 교회로 삼아서 함께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며 그런즉 희생 제물 역시 짐승의 피나 살이 아닌 사람 곧 그리스도의 피와 살과 같은 십자가의 죽으심(롬6:6~11)로 드려야 하며 예물 역시 사람의 마음 속에 귀한 것 즉 죄와 악을 없이 한 보석(보물) 같은 마음이 그 어떤 돈(헌금)보다도 귀하고 그 어떤 열매보다도 소중한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처음 익은 열매(약1:18)로, 예물로 받고 싶어하시는 것이며 그 일을 부족하고 연약하고 취약한,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우리 사람들이 못하기 때문에 그 롤모델로서, 본보기로서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신 것이며 그 본과 자취(벧전2:21)를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 속한 자(계14:5)가 되게 하시고 이로 인하여 온전한 참 형상인 죄 사함의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이니 그 앞에 높은 자(건축자), 낮은 자(성도)가 있을 수 없으며 믿는 자, 안믿고 못믿는 자가 있을 수 없으며 남자, 여자가 있을 수 없고 다 똑같은 하나(갈3:27~28)이며 이 이름을 하나님께서 머릿돌, 기촛돌로 삼으셨으니 천하 인간에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행4:10~12)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에 "자칭 구원자, 메시야, 예수, 선생, 하나님의 종... 등등등" 을 외치거나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이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호리고 꾀어 훔치는 절도요 강도이며 자신의 배(유익,이익)만 위하는 삯꾼 목자이며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20~22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때 독립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열사, 독립의사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경제 성장이나 문화 강국을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계획이 담긴 율법의 말씀을 지키며 전하신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없었다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향한 죄와 악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꿈꿀 수 없었을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종식시키고 끝내실(롬9:28) 그리스도도 드러나고 나타나지 못하셨을 것이요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곧 건물로, 성전으로 지어지지 못하였으리라. 그런즉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神)들처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삐까뻔쩍 으리으리한 건물에서 섬김을 받고자 하심도 아니요, 또 무엇이 부족하신 것처럼(행17:24~25) 돈이나 귀한 물건을 받고 싶으신 것도 아니요 오직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니 하나님께 있는 것이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생명이요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두려움도 없는 쉼(안식)이요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이시기 때문이며 앞서서 그 생명의 길(부활)을 열어주시고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시며 구원의 문을 터 주신 것은 그러한 기촛돌을 놓아주시고 친히 건물의 머릿돌이 되어주신 "그리스도" 로서 우리 역시 그 안에서 지어져가기 위해서는 기촛돌과 머릿돌을 놓으신 이유와 목적에 상응하고 부합하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같은(동일한) 마음으로 행하여야만이 비로소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이름으로 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곧 집이요 성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