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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교훈 안에 2023. 9. 19. 16:45

오늘은 누가복음 22장57절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에서 "부인(否認)하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부인(否認)하다." 라 하심은 사람의 어떤 되어진 사실이나 또 되어질 일에 관하여 "그렇다.", "맞다." 하며 인정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말로는 인정을 하면서도 정작 행동(행실)으로는 인정하지 못하는, 인정하지 않는 행동한다면 그 역시 부인하는 것이요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말과 행동을 다 들여다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러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였던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요한복음 13장37절에서는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할 것을, 부인(否認)할 것을 미리 아시고 누가복음 22장34절에서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미리 아신 것은 무슨 초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약 성경을 통하여 사람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아서 불리해지거나 손해가 생길 것 같으면 모르는체 내빼버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구약 성경의 간접 경험을 통하여 알고 계셨기 때문이며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정죄)하라고 주신 말씀도 아니요 상대방에게 눈총(단죄)을 주라고 주신 말씀도 아니라 오직 나 자신,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들여다 보아서 더럽고 부끄러운 것들을 씻고 닦게 하려고 주신 말씀이므로 베드로의 말과 행동이 다른 즉 부인(否認)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어찌 베드로에게 국한된 말씀일까? 더불어서 가룟인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은 삼십(선한 양심)에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짓(일)을 행함이 어찌 가룟인 유다에 국한된 말씀일까? 하는 것으로써 우리 역시 살다보면 본의아니게 말과 행동을 빈번하게 다르게 할 때가 많고 나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성공,성취)을 위하여 양심을 팔아버리는 짓(일)을 한 적도 있었음을 깨닫게 하고자 하심이 베드로의 부인(否認)하는 모습을 기록하신 목적과 이유이니 사람의 하는 일이 어찌 훌륭한 업적과 공로만 있을 수 있을까? 실수나 과오나 혐의나 잘못이나 과실을 무엇보다 먼저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함은 들추어 내고자 함이 아니라 그와 같은 과오나 과실의 전차를 또 다시 반복하여 밟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이것이 어떤 역사(국사,세계사)책에서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편찬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 사람은, 또 세상에서는 부인(否認), 부정(否定)하고 거짓말하는 이러한 모습을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때로는 사소하게 넘겨 버리며 그 신의(信義)를 저버릴 때가 많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롬1:29~32)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10장2~3절에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의(공의,공도,공정,정의... 등등등)" 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유익(가치관,신념,사상)이나 이익(기준,관점,잣대)에 의해서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또 그럴 땐 그렇게 내로남불식으로 바뀌고 변질이 된다면 그것을 어찌 의(義)라 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기준이 되어주는 메뉴얼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미 6000년 전에 모세를 통하여 그 메뉴얼이 되는 율법의 (십)계명(출25장,신5장)을 주셨으니 살인(미워)하지 말라, 간음(두 마음)하지 말라, 도적질(가스라이팅)하지 말라, 거짓말(말과 행동이 다름)하지 말라, 탐(욕심)하지 말라 하시는 "하지 말라." 는 것은 하지 말며 공경하라, 섬기라, 사랑하라 하시는 "하라." 는 것은 열심(마음과 정성을 다하여)과 충성(목숨을 다하여)하여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의(義)로써 공경함이 어찌 부모에게만 국한되며 섬기는 것이 어찌 하나님 한 분만에게만 국한되며 사랑하는 것이 어찌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될 수 있을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하는 것처럼 부모님 같은 웃어른, 부모님 같은 위치(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공경과 섬김과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들은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지식(지혜)과 의(옳은 행실)대로 행하는 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러나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청산유수처럼 하는데 정작 자기 자신의 의(유익,이익) 앞에서는 말과는 다르게 이해하거나 존중하거나 배려하거나 양보할 줄 아는 사랑으로 행하지 못하여 밉다고 미워하며 뜻대로 안된다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며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며 언짢다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인(否認)하는 것이요 거짓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부정(否定)하는 것으로써 빌립보서 3장8~9절에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하시면서 11절에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비록 다른 곳이 아닌 유대(이스라엘) 땅에 나타나셨지만 오셔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모세로부터 시작된 율법의 (십)계명에 관하여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셨으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고난,죽으심)" 로써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시는 살인(미움), 간음(두 마음), 도적질(가스라이팅), 거짓말(한 입에 두 말), 탐심(욕심)에 대한 율법의 계명들에게 순종하지 못하여 죄대로 악대로 행한 것에 면죄부(용서,죄 사함)를 얻기 위하여 무한 반복 제사(예배)를 드리고 희생 제물(헌금)을 올리며 거룩하고 성스럽고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와 찬송을 한다고 하여 마음(영혼,심령)에 있는 그 죄와 악이 사라지고 없어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에게 침 밷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멸시하던 유대인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몽학(유치원) 선생 아래에서 배우는 도의 초보(일부분)에 불과하여서 죄대로 악대로 행하던 것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절제하고 제어하고 다스리려는 노력(고난,죽으심)이 없이는 절대로 죄와 악에서 도망칠 수 없으며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주신 율법의 (십)계명에서 하라, 하라, 하시는 공경과 섬김과 사랑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실천할 수 있게 되며 마침내 완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배설물처럼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것을 알리고자 하여 그리스도께서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며 이로써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구속)으로 들어가심을 드러내신 것을 우리 역시 그 본과 자취(벧전2:21)를 좇아서 따라 오게,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요 이것이 진정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시인(롬10:9)하고 인정(신26:17)하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장2~5절에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기기 위해서는 부득불 돈(재력)이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돈 앞에 무정(인색,구차)하여져서 원통(앙심,억심)해 하며 또한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성공,성취)을 위하여 상대방을 참소(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며 사나워져서 배반(서로의 믿음을 저버림)하며 선한 양심을 파는 행동을 서슴치 않으며 보이는 앞에서는 세상 좋은 사람인 척, 친절한 척, 겸손한 척 하면서 보이지 않는 뒤에서는 상석(교만,자만,오만)에 앉은 마음으로 이러한 것들을 절제하거나 제어하거나 다스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경건의 능력(생명)이신 하나님을 부인(否認)하는 것이요 거짓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부정(否定)하는 것이니 디도서에서는 1장12절에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하시면서 16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하시는 것처럼 이 말씀이 어찌 그레데인들에게만 국한된 말씀일까?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시퍼런 이빨을 드러낸 맹수처럼 물고 뜯고 치고 박고 다투고 싸운다면 짐승털 옷을 입은 사람 곧 악한 짐승에 불과하며 그런즉 하나님의 의(義)대로는 절대로 열심과 충성을 낼 수 없는 게으름쟁이에 불과하니 말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믿습니다, 의지합니다, 주여 주여!! 입으로만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도 없고 효력도 없으며 오직 말 그대로 주신 계명들에게 순종할 수 있는 순종하기 위하여 죄와 악에서 벗어나고 이겨내려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이 없이는 반드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인(否認)하고 거짓말하고 부정(否定)하고 모든 신의와 선의를 저버리는 자로 드러나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