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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교훈 안에 2024. 5. 14. 16:22

오늘은 예레미야 20장8절에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에서 "강포(强暴)" 와 멸망(滅亡)"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강포" 라 하심은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인하여 모질고(악독) 야멸찬(자기 밖에 모름) 것을 의미하여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믿는 자의 통칭) 백성(성도)들에게 전함에 있어서 그들의 강포하고 강퍅하며 궤휼함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남는 것은 패망과 절망과 멸망과 사망의 재앙 뿐인 것을 알리고 전하였지만 그들은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나 일깨워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미워하고 비방하며 훼방하고 함부로하는 치욕과 모욕으로 갚는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못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을 인하여 예레미야가 고통스러워하며 아파하는 내용(본문의 말씀 그 뒷 구절 14~18절)들을 담고있는 말씀이니 이에 관하여 예레미야 21장10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14절에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그 얼굴을 그 백성(성도)들에게 향하심은 복을 주기 위하심이 아니라 화, 즉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을 위함으로써.....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통일 왕국 시대의 초대 왕 사울을 지나 다윗, 솔로몬 이후의 분열 왕국 시대에 남유다(예루살렘)는 바벨론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사마리아)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 당하였던 이 역사적인 사실사건사고를 예레미야서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예언서(이사야,에스겔,호세아,아모스..등등) 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인 지식을 알리고자 하여 기록하신 것이 절대로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시는 약속(언약)이 남아있고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생명(고전15:23)과 안식(히4:8~11)과 구원(엡1:7)으로 들어가게 될 사람들 곧 많은 아들들(히2:10)이 되기 위해서는 이 역사적인 일들을 거울(고전10:6)과 경계(고전10:11)과 생명의 교훈(롬15:4)으로 삼아 사람의 죄와 악으로 인한 멸망과 파멸과 사망이 재앙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그러한 전차를 두 번 다시 밟지 않게 하기 위하심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시편73편1~2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 6~9절에 "저희는~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내 코가 석 자라서 항상 근심걱정염려로 불안하고 두려우며 불안과 두려움을 인하여 또 항상 우울하고 초조하고 조마조마하며 또한 이러한 조급함이 사람으로 항상 슬프고 괴롭고 아프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또 이러한 마음의 짐(스트레스)들은 각종 질병(염증,암,바이러스..등등)을 만들어 시들시들 서서히 죽음(사망)을 향해 달려가게 하며 거기에 얘기치 못한 사고(교통사고,붕괴사고,인재..등등)와 뜻밖의 자연 재해(지진,홍수,혹한,폭염..등등)를 인하여 개죽음을 당하는 파리 목숨, 하루 살이 같은 재앙의 낭떠러지는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 앞에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실족하여 넘어지고 미끄러질지 모르므로 이러한 것으로부터 안심 보호막 아래 즉 보호하심(잠6:20~22)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의 높아져서 뻣뻣해진 목과 눈과 입과 코를 땅에 닿는 포복 자세로 만들어야 하며 그래야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 같은 삶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강포(모질고 독하고 야멸차며 사나운 심성)를 옷 입듯 입어서 살쪄 있는 마음을 옷 벗듯 벗어던지고 그 자리에 인자(너그럽고 부드러움)하고 따뜻하고 착한 마음으로 채워 넣어야 하리니 요나서 3장8~10절에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 "요나서" 를 기록하게 하실 때에 어찌 그 시대 그 세대의 니느웨 사람들의 사악함과 강포함을 고소고발하듯 역사적인 사실사건사고만을 전하기 위해서 기록하게 하셨을까? 하는 것으로써 말세를 만난 현재의 우리들에게 사람이지만 자신의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성공,성취,쟁취) 앞에서는 사람임을 포기하고 서슬퍼런 짐승(인면수심)이 되어버리는 짐승 탈(가면)이나 짐승 옷을 벗어 던지고서 이제는 일깨우고 돌이켜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선(善)과 의(義)를 행하는 진짜 찐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돌아올 때에 비로소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로 들어가게 될 것을 알리시는 약속(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잠언서 4장13~17절에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사특(악)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서점에 가면 있는 여느 교훈의 책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런저런그런 훈계의 말씀들을 곳곳에 기록하신 목적은 오직 생명과 안식과 구원(딤후3:15~17)으로 안내(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며 또한 사람의 마음 속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사악하고 악독하고 강포한 것들을 인하여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며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언짢으면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던 길(첩경)에서 돌이켜 이제는 순화(부드럽고 너그러움)하고 승화(착하게 바꿈)시켜서 마음의 평화(평안,행복,기쁨..등등)를 얻게 하려 하심이니 여기(땅)에서도 누리지 못하는 평화와 쉼을 어찌 거기(하나님 나라)에 가서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합리적이고 논리를 인하여 예레미야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야 할 사람들은 이제는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을 인하여 없어지고 사라진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