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가복음 4장28절에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에서 "곡식" 곧 "열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곡식" 이라 하심은 "쌀, 보리, 콩, 조, 밀, 기장" 과 같은 사람의 양식이 되는 곡물을 의미하며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알리고자 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땅(눅8:15), 흙(창2:7), 밭(마13:24)" 이라고 하는 사람의 마음에 씨(말씀-눅8:11)를 뿌리시는 농부(요15:1)로서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릴 때에는 여름동안 부지런히 가꾸고 키워 그 무엇도 품을 수 있는 나무로 자라게 하여서 가을(추수)이 오면 거기에 합당한 곡식이나 열매를 기대하여 겨울에 저장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씨는 이미 봄과 같은 6000년 전에 뿌려 주셨고 또 6000년 동안 여름처럼 키워 오셨으며 그러나 그 곡식이나 열매가 아직도 지금처럼 왔다갔다(좋아했다 기분나쁘면 미워했다), 오락가락(마음에 들어했다 수 틀리면 비방했다), 이랬다저랬다(매너있다 못마땅하면 갑질했다) 하는 미완성된 모습이나 또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 앞에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파리목숨 같은 불완전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가을이 온다고 할지라도 농부(하나님)에게 버림 받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므로 온전(마5:48)하고 완전(롬13:10)한 사람 즉 그러한 알곡(눅3:17)이나 실과(계22:2)로 드러나고 나타나도록 스스로 노력과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중요한 것은 제아무리 극상품의 좋은 씨라 할지라도 씨가 떨어지는 그 땅(흙,밭)이 변변치 못하다면 어찌 씨가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며 또 싹이 나고 나물(연한 순)이 되고 나무로 자라서 훌륭한 곡식이나 열매로 자랄 수 있을까? 오직 온전하고 완전한 즉 좋은 씨만큼 좋은 땅이 되어야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거기에서 나오는 좋은 곡식도 열매도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과연 좋은 땅인지 또는 좋은 땅의 조건이나 자격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하며 알아서 고칠 것은 돌이켜서 고쳐 행하여야 하리니 씨(말씀)는 비록 하나님께서 주셨을지라도 "땅이 스스로 노력하고 수고하여 자라서 열매(알곡,실과)까지 맺는 것" 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가복음 4장15절에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을 하는 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말씀을 빼앗는다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을 의미하여서 사람이 살다보면 왜 화는 일이, 못마땅한 일이, 마음에 안드는 일이 왜 없을까? 마는 뜻대로 안된다고 미워하거나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거나 못마땅하면 갑질하거나 언짢아지면 짓밟아버리는 못됐고 나쁘고 악독한 죄대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선(이해,존중)과 의(배려,양보)대로 행하라고 주신 메뉴얼인 (십)계명 즉 말씀에 대하여는 잊어버리는 자 즉 길가에 뿌리운 자가 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다 귀가 얇고 또 책 한두 권은 쓸법한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우울한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한 확고한 신념이나 확실한 신의가 없으면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요구(선과의)에 관하여는 항상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으므로 돌밭에 뿌리운 자가 되는 것이며 그리고 이 세상에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그 한 가닥 욕심을 성취하고 쟁취하기 위한 한 가닥하는 한 성깔 역시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욕심과 교만을 인하여 사람은 항상 근심걱정염려, 초조불안조급함을 무슨 친구처럼, 가족처럼 항상 끼고 살게 되며 믿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뜻(요구)대로 행하기조차 어렵게 되니 가시떨기에 뿌리운 자가 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러(길가밭)저러(돌밭)그러(가시밭)한 것들을 버리고(절제) 비우고(제어) 죽이는(다스림) 노력과 수고의 주체는 오직 사람 스스로가 해내야 할 몫이기 때문에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좋은 땅(흙,밭) 곧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어서 알곡(온전)으로든, 실과(완전)로든 결실하게 되며 결실치 못하고서야 어찌 하나님의 유업인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구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마태복음 7장16~20절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못된 나무)에서 포도(좋은 열매)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시는 것처럼 좋은 열매(알곡,실과)는 좋은 나무라야 가능하고 좋은 나무는 좋은 땅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제아무리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뒤에서 개차반으로 행하거나 해서는 안되는 못난 짓(일)을 한다면 열매(온전,완전)를 보아서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 마음 씀씀이를 미루어 알 수 있게 되므로 절대로 핑계할 수도 없으며 속일 수도 없기 때문에 입이 백 개라도 입을 다물고서 고쳐 행하는 것이 그나마 늦었다고 할 때에 가장 빠른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19~23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음행" 이라 하심은 두 마음을 품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그 주신 (십)계명은 잊어버리고서 치고 박고 물고 뜯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을 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이는 "음행" 이요 하나님의 색보다 사단마귀귀신 색을 좋아하는 호색하는 자요 우상(사단마귀귀신)숭배하는 자요 죄와 악의 술수대로 행하는 자요 죄와 악이라고 하는 독술에 취한자요 취하여 방탕하는 자이니 이것이 어찌 세상 사람들만의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유업(생명,안식,구원)을 받지 못할 것은, 알곡창고(하나님나라,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은 당연하며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을 앞서서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나타나심은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그러한 본과 자취와 흔적을 좇아서 우리 역시 따라 지켜 행하게 하려 하심이요 이로써 사랑(이해,존중,배려,양보)를 직접 행동으로 옮겨 행하게 되며 그 속에서 희락(즐거움,기뿜,행복)을 얻게 되며 희락은 마음을 화평(평안,평화)하게 만들며 오래 참을 줄도 알게 되며 자비(너그러움)와 양선(부드러움)과 온유(따뜻함)가 절제(끊고 맺음)가 있는 온전하고 완전한 사람 곧 성령의 열매(알곡,실과)가 되리니 지금의 어설프고 어쭙잖고 촘촘하지 못하여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절대로 다른 사람을 온전하고 완전한 데로 안내(인도,전도)할 수 없으므로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제대로 서고 제대로 닦고 제대로 세워야만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그 다음 방향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