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레미야 23장20절에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에서 "깨닫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 "여호와의 노(怒)" 라 하심은 에베소서 2장3~5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10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우리 사람을 향한 관심사는 오직 "죄와 악(사59:1~2)" 이며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야만이 지금의 이런저런그런 지옥 같은 괴로움, 외로움, 두려움, 아픔, 슬픔, 우울, 근심걱정염려, 초조조급조바심에서도 저절로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이로써 비록 몸은 땅(세상)에 있지만 마음만은 하늘(천국)에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여느 신(神)들에게 기도하며 비는 것처럼 살아가면서의 어떤 요행(사업이 잘되게,좋은학교 좋은집에 들어갈 수 있게..등등)이나, 성공 한 방(떼돈을 벌거나 생기는 것)을 손톱만큼이라도 바라고 있다면 마음이 지옥인체로 누리는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모한 일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요행,한 방)을 원한다면 다른 신(神)을 찾아가 믿고 따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언제(인류 역사상), 어디서나(가정,학교,직장,모임,단체,국가간..등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러 이해관계에 의해서 물고(미워함) 뜯고(비방함) 치고(함부로함) 박고(갑질) 피(짓밟아버림) 터지는 전쟁(보복,복수)을 한 적이 있고 또 이를 주변에서 보았다면 하나님을 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는 무식(호4:6)을 인하여 사람 스스로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파리목숨 같은 재앙을 자초(사3:8~9)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노(怒)" 로써... 그러나 희망과 소망이 있음은 하나님의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우리 사람을 그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또 그를 통하여 살 수 있는(생명,안식,구원) 기회와 길을 열어 주셨으며 그 기회와 길은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본보기를 보이신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 을 동일한 마음으로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는 자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 이요 이를 이해하게 되는, 깨닫게 되는 때가 "말일(마지막 때, 세상 끝)" 즉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행1:11)이 이루어지는 때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깨달으리라." 하심은 자의든, 타의든 몰랐던 어떤 이치나 섭리의 참된 뜻을 이해함으로 말미암아 환하게,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하여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의 마음의 뜻하시는 바" 에 관하여는 창세기 17장8~9절에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미 6000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가나안에 대한 영원한 언약" 으로 우리 사람에게 주셨으니... 아담의 때에 가나안은 에덴 동산이었지만 사람의 보암직(안목의 정욕), 먹음직(육신의 정욕), 지혜로움직(이생의 자랑)한 욕심에 이끌리고 유혹되어서 죄대로 악대로 행하게 된 그 순간 에덴 동산은 옛말이 되어버렸으며 또한 노아의 때에 가나안은 아라랏산이었고 그 곳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방주(벧전3:20~21)였지만 먹고 마시고 즐기던 욕심(안목의 정욕,육신의 정욕,이생의 자랑)에 취해서 방주는 물건너 가버렸으며 모세의 때에서야 비로소 실질적인 가나안을 보여주시고 애굽을 탈출시켜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노정을 계획해 주셨지만 사람의 여전히 지금도 아직도 이러저러그러한 여러 욕심을 인하여 높아진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말미암아 현실은 가나안인 듯 가나안이 아닌 가나안인 것 같은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2차원적인, 3차원적으로 어떤 특정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은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4차원적인 의미이며 마음이 지옥인데 그 장소(위치,자리)가 절대로 천국이 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지나간 역사(아담의 때,노아의 때,모세의 때..등등)적인 사실사건사고를 거울과 경계(고전10:11)와 생명의 교훈(롬15:4)으로 삼아서 지금 우리 자신이 서 있는, 생활하고 있는 그 곳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 지옥이 될 수도, 천국이 될 수도 있으므로 중요한 것은 보암직한 안목의 정욕을 버리며 먹음직한 육신의 정욕을 비우며 지혜로움직한 이생의 자랑들을 죽이려는 십자가의 고난을 그리스도와 동일한 마음으로 겪어서 이겨내야만이 비로소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며 도착하게 되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향하신 뜻하는 바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21~24절에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 이라 하심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과 같이 하나님의 법은 사랑(눅10:25~28,롬13:8~10,갈5:14~15,약2:8~10)으로 다 통하며 이것이 선(善)이요 의(義,옳은 행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랑" 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마음에 심긴 도(道)이며 그런즉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의 법" 이기는 하지만 때때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미움, 원망, 분노, 비방, 함부로함, 갑질과 같은 죄악의 법도 마음 속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으므로 몰랐으면 모를까 이제 이를 보았다면, 알아차렸다면 버리고(절제) 비우고(제어) 죽이는(다스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벗어날 줄 아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며 정상이지만 계속하여 오락가락, 왔다갔다, 이랬다저랬다 한다면 계속하여 괴롭고 외롭고 두렵고 슬프고 아프고 우울하고 초조하고 근심 많은 곤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며 이를 인해서 계속하여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지으실 때에 "정직(전7:29)" 이라는 이름으로 주신 돌아가야 할 고향(본향)이며 그 고향에 도착했을 때에, 돌아왔을 때에 비로소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노(怒)에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벗어나게 되리니 시편 49편12절에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하시면서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분명하지만 사랑받기도 부족한, 사랑하기도 짧은 시간(세월) 속에서 무엇을 얻기 위하여 어떤 것을 위하여 꼭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서로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잡아도 잡히지 않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 한 꾸러미 성취해보겠다고, 누려보겠다고 다른 사람(상대방)을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지옥을 맛보게 한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년만년이 아니라 질병(암,바이러스), 사고(붕괴사고,교통사고,전쟁사고), 재해(홍수,지진,폭염,혹한)를 인하여 개죽음을 당하는 목숨 같은 재앙만이 있게 되니 이것이 사람 스스로가 자초한 "여호와 하나님의 노(怒)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