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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

교훈 안에 2025. 1. 30. 06:01

오늘은 예레미야 32장43~44절에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로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서 "황폐하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황폐하다." 다 하심은 어떤 이유로 인하여 땅이 되었건, 집이 되었건 오랜동안 돌보지 않아서 험해지고 못쓰게 된 상태를 의미하고 이를 "사막화된 황무지(荒蕪地)" 라 하며 중요한 것은 땅이나 집이 황폐해져 황무지가 되면 덩달아 사람의 마음 역시도 황폐해지고 피폐(지쳐서 쇠약해짐)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본질은 "사람의 마음이 매마르고 황폐해진 것" 을 알리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하며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유다 예루살렘) 땅이 황폐해져 황무지가 되고 사람들의 마음도 매말라 피폐해졌는가? 하는 것으로써 오늘 본문의 말씀의 앞 구절 30절에 "이스라엘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목전에 악만 행하였음이니~ 33절에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칠찌라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 35절에 "유다로 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예로부터 즉 아담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신 것은 "반드시 죽게 되니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창2:17)" 하는 것이었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청개구리 같이 더 하고 싶은 것이 또 사람(롬7:7~8)인지라..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노아의 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차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6:5)" 이라 홍수로 멸하셨으며 또 그로부터 2000년이나 흐른 모세의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신 요구는 오직 "십 계명대로 지켜 행하라." 하시는 뜻이요 그 시험대(신8:1~2)가 되었던 것이 바로 "시내 광야" 였었지만 지켜 행하기는 커녕 오히려 불평불만(시편78편)만 늘어놓으면서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저항을 인하여 매마른 광야보다도 더 황폐해지고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더 파리(핏기가 없이 야위고 해쓱-시106:13~15)해져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으니 그 황망하고 허망함이 가히 짐작이나 갈까? 하는 것이며 또한 그로부터 또 1000년이 지난 초림 예수 그리스도의 때에도, 또 그로부터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2025년)에도 시간(세월)만 흘렀을 뿐, 공간(장소)만 바뀌었을 뿐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지도 않으시고 마음에 둔 적도 없는 죄대로 악대로 아직도 지금도 행하고 있음이 안타까운 현실이며 이를 인하여 사람의 마음은 점점 매말라(가뭄) 가고 황폐, 피폐, 파리해져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러한 황폐해진 황무지와 같은 사람의 마음은 계속하여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를 향하여 달려갈 뿐임을 말하고자 하신 것이며 그 도구 즉 손에 붙인 바가 되었던 "갈대아 즉 이방 족속 바벨론"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 9장11절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하시면서 13~14절에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으로 안식과 쉼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히4:8~11) 즉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게하려 하여 하나님의 법 곧 "십 계명" 을 통하여 하지 말아야 할 죄악(살인,간음,거짓말,도적질,탐심)과 반드시 행하여야 할 선의(거룩,겸손,섬김,공경,사랑)를 주셨지만 그 마음을 절제(버림)하지 못하고 제어(비움)하지 못하며 다스리지 못함(죽임)을 인하여 오히려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따라 불평불만원망, 갈등대립분쟁, 비방보복복수 좇아서 행하였으니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이방 족속의 신(神) 바알을 좇아가는 참 형상(실물,실체,참뜻)으로써 그러니 제아무리 교회(성당,예배당,성전,사원..등등)를 열심이 다녀도, 또 열심으로 충성봉사를 하여도, 또한 "믿습니다. 주여주여!!" 외치고 부르짖은들 본질과 현실은 알고보니 이방 족속의 이방신을 따르며 좇고 섬기고 있는데 그 황폐함과 피폐함과 파리함을 어찌 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그 미래는 참혹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있는 예레미야 32장의 23~24절에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주의 도에 행치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하신 일을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보옵소서 이 성을 취하려 하는 자가 와서 흉벽을 쌓았고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으니~ " 하고 쓰고 있듯이 모세의 때에는 이방 족속 애굽에 430년간 종노릇을 하였고 분열 왕국 시대에는 바벨론에 70년(렘25:11) 동안 에워싸이고 사로잡혀서 노예(식민지)로 살았으니 우리 나라(대한민국)도 36년간 일제치하(일본 식민지)에 있었던 흑역사가 말해 주듯 그 삶의 칼과 기근과 염병과 같은 팍팍함과 퍽퍽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러한 삶으로 인한 사람 마음의 황폐해짐과 피폐해짐은 언제 해방과 자유(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지 모르는 막연함과 막막함 속에서 절망과 좌절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하물며 430년이란, 70년이란 시간(세월)은 사람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를 반복하는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 속에서 모세의 때에도 가나안을 코 앞에 두고 광야에서 다 죽었던 것처럼 과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가나안(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관한 영원한 약속(창17:7~9)이 이루어지기나 할까 하는 믿음조차도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고 희미해지기에 충분하였으니 그러나 마태복음 24장15~16절에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하시면서 22절에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마태복음 말씀은 다니엘서 9장27절, 11장31절, 12장1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하신 약속(예언,언약)의 말씀으로써 종합하여 설명하자면 예레미야나 다니엘이 활동하던 시대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법(십 계명)대로 지켜 행하지 않고 거룩한 곳 곧 유다 예루살렘의 범죄(죄악)함을 인하여 그 백성이 멸망의 가증한 것 곧 이방 족속 바벨론의 포로(노예)로 잡혀있을 때이므로 살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땅히 죄대로 악대로 행하던 죄과(사59:20~21)에서 떠나야 하며 이를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라고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이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아담 때), 아라랏 산(노아 때), 모리아 산(아브라함 때), 시내 산(모세 때), 감람 산(초림 예수 때), 시온 산(마지막 때)" 하는 것처럼 산(山)에 계시기 때문이며 하지만 진짜 지리산, 한라산 하는 산이 아니라 죄과에서 떠나 모인 사람,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러한 사람의 마음, 마음들이 모인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이름(간판)이 걸려 있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치며 부르짖는다고 하여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뜻대로 요구대로 지켜 행할 줄 아는 그 곳이 어디가 되었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온전한 참 형상의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요 시온 산이 되리니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어버리면 아직까지는 그 영혼도 자연스럽게 소멸(겔18:20)되게 되고 그 영혼이 살고 있던 집(육체,몸,신체) 역시 폐가(썩어버림)가 되므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는 옛 말도 있고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9:4)" 는 말씀도 있지만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하며 그러나 430년, 70년 같이 너무 길면 노쇠노환으로 죽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개죽음이나 요절하기 쉽상인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황폐하고 피폐하여 잡혀있는 시간(세월)을 감하여 주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빨리 빨리 신속하고 정확하게 소식을 전해들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지금의 온 세상의 네트워크(핸드폰,유튜브,뉴스매체..등등)가 이를 증거하고 있으니 이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살아서 이루어지는,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한 생명 그 자체이신데 죽어서 가는 천국은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미가서 6장6~8절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의 마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것처럼 윤택하고 여유롭지 못하고서 불평불만원망, 갈등대립분쟁, 비방보복복수로 얼룩져 폭탄테러전쟁이 어디에 있은들 황폐하고 피폐하지 않을까? 또 그 마음이 기쁘거나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감사하지 못하고서야 어디에 있는들 마음 편히 안식하며 쉴 수 있을까? "가나안" 은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이며 그 마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공의(공정,공평)하고 인자(자비,사랑,너그러움)하며 겸손할 때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요 찾아갈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십 계명" 을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요 이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완성(지켜 행함)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며 이제는 그러한 그리스도를 닮아 지켜 행하는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들을 찾아서 이방 족속 갈대아의 손 곧 죄악, 죄과에서 떠나고 벗어나게 하여 가나안(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