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서 5장14절에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하시면서 17절에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왕노릇 하였은즉 한 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 그리스도"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표상(表象)" 이라 하심은 "상징(symbol)", "표본" 또는 "그러한 양상" 을 의미하며 또 오늘 본문의 말씀에 "아담" 이라 하심은 어떤 한 사람(인물)을 특정하여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현인류 즉 약 2,3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 를 대표하는 이름의 "대명사" 이니... 다시 말해서 6000년 전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 에 관하여 율법(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 기록하게 하실 그 시대에 "아담와 하와 외에는 사람이 없었을까?", 또 "과연 아담과 하와만이 죄를 범하였을까? 하는 것으로써 이 시점에서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고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바로 앞 구절 13절에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고대 인류(네안데르탈인,오스트랄로피테쿠스..등등)를 비롯해서 현인류(호모사피엔스)와 모든 생물은 "적자생존의 법칙" 에 의해 "전쟁이야!!" 하는 것처럼 살고자 하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목적과 먹이(유익,이익,성공,성취) 앞에 서슬퍼런 이빨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즉 치고 박고 물고 헐뜯고 짓밟아버리고 피(보복복수) 터지는 테러전쟁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범죄요 죄악" 기록하고 있고 이를 비로소 알게 되고 마침내 깨닫게 된 시점이 6000년 전이라는 것이지 그 이전에도 사람(호모사피엔스)들은 많이 있었고 또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는 그 때에는 그것이 범죄인 줄은 몰랐으나 전쟁(갈등,대립,분쟁) 범죄와 죄악은 항상 있었다는 의미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는 바 이(범죄,죄악)를 인하여 결국 현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 만물은 아담이 그 지어진 것(흙)으로 돌아갔듯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저주의 표적(고전15:55~56) 아래에 있게 되고 그러한 재앙의 주문(주술)에 걸려 도르마무 도르마무(무한 반복) 그 쳇바퀴를 돌면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되므로 "오실 자의 표상" 즉 "그리스도의 표본(본보기,롤모델)"은 절대로 그러하면, 그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요 그 사람(오실 자의 표상)을 "마지막 아담(고전15:45)" 또는 "둘째 사람(고전1547)"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니 창세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천지 만물과 사람(아담,하와) 창조" 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은 창조의 대략(창2:4)에 관한 것이지 전부(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호세아 6장6~7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호세아서는 아담의 때로부터 자그마치 3000년이나 지난 이후에 기록된 말씀이며 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지 않고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여서 기록된 말씀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향하신 뜻과 요구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행17:25) 돈(헌금)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떠받들어 모셔 섬김을 받고자 하심도 아니요 오직 "죄를 범하지 말라, 악을 행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제대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언약(약속)을 지켜 행함으로 생명(부활)과 호흡(구원)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며 그런 취지로 제사(예배,헌금)보다도 인애(서로 사랑하라.)를 원하시는 것이지만 우리 사람은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하며 언짢으면 짓밟아 버리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여 놓고는 "고해 성사, 신앙 고백" 이라는 이름으로 제사(예배)와 번제(헌금)를 통하여 면죄부를 얻으려 하고 퉁치려고 하니 조폭이나 대기업 회장이 사람을 개 패듯 패(폭력)놓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럴려고 하나님께서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율법(모세 오경)을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첫 사람 아담 즉 우리 사람" 이 자꾸만 죄를 범함(갈3:19)을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악인임을 깨닫게(롬3:20)하려 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죄 앞에, 악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지할 줄 알고 자각할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런 연후에라야 비로소 돌이킬 마음, 뜯어고쳐 행할 마음 곧 회개(마4:17)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므로 회개나 개혁은 말에 있지 않고 말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두 번 다시 그런 전차를 밟지 않도록 먼저는 마음이 새롭게 바뀌어야 할 것이요 마음이 바뀌어야 행동(행실,행위)도 돌이켜서 고쳐 행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표상(표본,본보기)으로 오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이시며 그러니 "오실 자의 표상으로서의 그리스도" 는 첫 사람 아담과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바뀌야 하는지를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전하고 알리고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 지도자들(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의 몫이지만 엉뚱(갈등)하고 헌탄(대립)하고 이상한(분쟁) 것들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꼴이 된다면 말로만 다 해 먹는, 말로써 날로 먹는 회쳐먹는 "거짓공갈사기협박조작의 대명사" 가 될 것이요 이문(이윤-재력,위력)만을 추구하는 "장사꾼" 을 넘어선 "도둑강도절도" 로 드러나고 나타나게 되리니 보았다면, 들었다면, 깨달았다면 이 엄중하고 귀중한 소명과 사명을 절대로 게을리 할 수 없었으리라..... 요한일서 3장8~12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며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가인 같이 하지 말라." 하시는 것처럼 이 세상에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등쳐먹는 정도의 혐의는 아닐지라도 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시작이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담와 하와" 가 있고 또한 "아담과 하와" 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만들고 오히려 죄를 범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옛 뱀 곧 마귀사단이요 용(계20:2)이며 이를 악령(귀신)" 이라 하며 그러나 악령(귀신)은 하나의 구실(역할)에 불과할 뿐이고 본질은 하나님이 아닌 그 귀신의 유혹적인 말(보암직,먹음직,지혜로움직)과 그럴듯한 뜻(안목의 정욕,육체의 정욕,이생의 자랑)에 더욱더 솔깃하여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러한 욕심을 인하여 그 뜻과 말을 좇아서 행하였던 아담 곧 사람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지 이로써 마귀(귀신)의 자녀임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 되고 증거(증명)하는 것이 되며 우리 역시 계속하여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마귀(귀신)의 아들(자녀)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일(죄범하고 행악하는 일)을 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신 일은 단연 죄악(罪惡)를 버리고 잘못을 비우며 사나운 심성(성질)을 다스릴 줄 아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며 이로써 드디어 사망이 아닌 생명(부활), 파멸이 아닌 안식(쉼), 멸망이 아닌 구원(구속)의 축복과 은혜 아래에 있게 되므로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함을 인하여 아담과 같은, 가인과 같은 후예(후손,자손)가 대대손손 유전처럼 이어져 온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0장29~31절에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는 옛말도 있고 강산만 변하랴. 덩달아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변질되어 가지만 절대로 변해서는 안될 한 가지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완성(롬13:8~10)하기 위하여 그릿도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 을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시고 가신지가 벌써 100년, 200년도 아니고 벌써 2000년이나 지나고 흐른 오늘날에... 6000년 전 아담(현인류)의 범죄함을 인하여 멸망하고 파멸 당하는 이 사망(죽음)하는 일이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연의 이치(섭리)인 것처럼 되어버리고 있는 이 때에 그것이 아님을, 그렇지 않음을 알리고 전하고 가르칠 마지막 아담 곧 오실 자의 표상으로서 "그리스도" 를 하나님께서 보내심은 꼭 맛을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람이 왜 사람인지, 왜 사람이어야 하는지의 척도가 되는 것이 도리적, 윤리적, 도덕적인 것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형체(고전15:40)로 드러나고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사랑(이해,존중,배려,양보,겸손,섬김..등등)" 이며 이 "사랑" 을 실생활 속에서 온전히 몸소 실천하여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되고 악한 것들을 버리고 비우고 죽여야 한다는 선행이 전제되어 있고 그 사랑의 힘(행실)이 마침내 우리 사람을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 앞으로 인도(안내)하는 이정표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본질적인 "오실 자의 표상" 이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죄과에서 떠나고 행악에서 벗어나 이제는 십 계명의 핵심 계명이기도 한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눅10:25~28) 지켜 행하여야 할 때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