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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가산(한 집안의 재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교훈 안에 2025. 4. 23. 16:04

오늘은 마가복음 12장39~40절에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과부의 가산(한 집안의 재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에서 "외식(外飾)"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외식(外飾)" 이라 하심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모임,단체..등등)을 향해 보이는 앞에서 겉모습만 보기 좋게 꾸며서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에서 "겉모습" 이라 함은 외모(겉사람)로 즉 명품(옷,시계,귀금속,신발..등등) 또는 말끔하고 깔끔하고 품위있게 걸치며 차려 입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음(속사람)으로 즉 기도나 예배(세례,안수,축복,성찬식..등등)를 동원하여 고상한 척, 겸손한 척, 거룩한 척, 경건한 척, 엄숙한 척하는 것도 있으므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외식(外飾)"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지만 어찌 "서기관들" 뿐이랴. 또한 어찌 그 때 그 시대 사람들만 그러하랴. 어느 시대에나, 어느 세대에나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지위고하,나이불문)랄 것 없이 그것이 서기관들 같은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라 할지라도 체면이나 자존심이나 욕심을 인한 응큼하고 음흉하고 시커먼 속내는 누구나 다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자신들의 이런저런 능력(재력,학력,위력,지위,나이,성별..등등) 뒤에 감추고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간판)을 빌려 높은 자리, 윗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의 배(유익,이익,성공,가산을 삼킴)를 채우는데에 "외식(外飾)" 을 활용(응용)한다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잘 몰라 안믿었거나 못믿던 세상 사람들, 또는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백성,성도) 입장에서는 절대자(하나님,예수님)의 이름 앞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충분히 그 부추기는 부추김대로 가스라이팅 당할 수 있게 하는 좋은 도구(매개체)가 될 수 있고 이로써 그 받을 판결(죄와 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으므로 "서기관들 곧 외식(外飾)하는 사람들을 삼가(조심,경계)하라." 고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이며 그러니 "외식(外飾)의 가장 큰 병폐(폐단)" 는 마음은 그러하지 않고 그러하지 못하여 구질구질하고 찌질하고 쪼잔하고 인색(궁색,야박,야멸참)하고 모질고 악독(표독,악랄)해도 얼마든지 외식(外飾)으로 덮어버릴 수 있고 이러한 허영이나 허세 뒤에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외식(外飾)하는 사람들의 모습(태도,자세)" 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나 자신의 삼가할 "외식(外飾)하는 모습" 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구분하고 구별하는 방법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5장7~11절에 "외식하는 자들아.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이사야 29장1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치시는 말씀이며 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사람들의 외식(外飾)하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에둘러서 표현하신 말씀이므로 여기에서 "사람의 계명, 교훈" 이라 하심은... 우리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가는, 살아내는 것이 최대의 미션(임무 수행)일 수 밖에 없고 그 중심에 스펙(재력,학력,권력,위력,지위..등등)이 있어서 이를 위하여 서로 줄 세우고 뒤 봐주고 눈 감아주는 관행(계명)을 좇아가게 되며 그러한 속에서 사람이라면 당연히 줄 세워주고 뒤 봐주고 눈 감아준 것에 관한 댓가(보상,보답)를 기대하기 마련이며 하지만 그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게 되면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하고 언짢음을 인하여 꼬리 자르기 하듯 잘라버리며 꺼져가는(위기,위태) 심지(촛불)를 꺾듯 꺾어버리며 하찮은 벌레 밟듯 짓밟아버리는 교훈(학습)을 시전(펼쳐 보임)하게 되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성도,백성)에게 가르치신 가르치심의 핵심은 마태복음 12장18~20절에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말하는 입과 행하는 행실)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아주 소란스럽고 시끄러움)지도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라면 뜻대로 안되어도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면서 꺾지 말아야 하며 마음에 안들어도 존중하려 하면서 꺼트리지 않아야 하며 못마땅해도 배려하려 하면서 짓밟아버리지 말아야 하며 언짢아도 양보하려 하면서 들레거나 다투지 않아야 하지만 우리 사람은 특히나 높은 자리(지위,위치)나 윗자리(나이 많음, 성별의 우월성)에 앉아있는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의 입장에 있게 되면 그것이 무슨 벼슬인 양 상전(임금,제왕)인 양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은 욕심을 인하여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거나 갑질하는 죄악까지도 서슴치 않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사람에게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간판)을 빌려 이렇게 부추기면서 교묘히 사람들(성도,백성)의 마음을 교란시켜 자신들의 배(유익,이익,성공,재력..등등)만 불린다면 이보다 더 큰, 더 한 거짓공갈협박조작이 없기 때문에 거의 "외식(外飾)의 끝판왕" 이라 말할 수 밖에 없으니 히브리서 7장1~2절에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평강의 왕이요~ " 하시는 것처럼 이제는 선(善)과 의(옳은 행실)를 위하여 어디에 있든지, 어느 자리에 서 있든지 그 마음을 말석에 둘 줄 알아야 하고 또 자꾸만 외식(外飾)하게 만드는 체면과 자존심과 욕심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며 또한 그 있는 곳에, 머무는 곳에 평강(화목,화기애애,평화)이 있기 위해서는 가식(假飾) 외식(外飾)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서 서로가 서로에게 미워하기 보다는 이해함으로, 비방하기 보다는 존중함으로, 함부로하기 보다는 섬김으로, 짓밟아버리기 보다는 겸손함으로 즉 솔직정직할 줄도 아는 것이 바로 외식(外飾)의 끝판왕에서 의의 왕, 평강의 왕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요 이 모든 것을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이 그리스도이시며 그런 의미에서 "유다(살렘)왕" 이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믿습니다. 주여주여!!" 외치고 부르짖는 외식(外飾)이 아니라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수고)의 십자가의 고난을 겪음으로써 그리스도와 동일한, 하나 된 마음으로 좇아 따라 지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장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이 "외식(外飾)" 을 비롯한 가식이나 허영, 허세를 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마음이 상석(교만,오만,자만)에 있어서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물고 헐뜯고 다투려는 죄악을 죽여야 하며 그런 연후에 그 마음을 말석에 두어 낮아져서 겸손하고 겸허하게 될 수 있으며 비로소 마침내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이타심, 섬김(모심,대접)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며 이 모든 것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며 이로써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로 들어가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이것이 아니고선 절대로 그리스도의 마음, 온전하고 완전한 선한 양심으로 바뀔 수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심이며 또한 바뀌지 않는다면 계속하여 여전히 남의 눈을 속이고 마음을 꾸미는 "외식(外飾),가식 허영, 허세" 로 행하게 된다는 것을 전하기 위하심이며 이로써 받을 판결(죄와 벌) 즉 구원이 아닌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의 소용돌이와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하심이기 때문에 믿는다면, 사랑한다면 그 본보기와 자취와 흔적을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여야 하며 그러한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들을 찾으러, 얻으려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