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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이사야 49장20절)

교훈 안에 2017. 12. 18. 19:04

오늘은 이사야 49장20절에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 에서 "낳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낳다"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5년1월24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사람이나 동물이 자기 새끼(자녀,자식)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을 뜻하며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도 원초적인 "낳다." 의미를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하듯이 어질고 지혜로운 임금은 또한 그 밑에 충성되고 선견지명이 있는 신하를 얻으며 참되고 의로운 스승은 또한 그 아래에 참되고 의로운 제자들이 따르게 되며 자상하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 밑에는 또한 자상하고 사랑이 많은 자녀(자식)을 얻게 되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15~16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마치 부모가 자식(자녀)를 낳듯 스승으로써 그 말씀의 가르침으로 본받게 하여 신실하고도 충성스러운 제자를 얻게 된다면 이는 마치 아버지와 자식(자녀)과도  같은 관계가 되어서 "얻었다.", "낳았다." 라고 하며 그러한 과정에 있다는 "잉태하였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며 이를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여 주신 말씀이니 그런즉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고난 중에 낳은 자녀" 라 하심은 쉽게 말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받으신 많은 고난(고생,고뇌,애통,눈물,심적 갈등) 가운데서도 이방과 같이 되어버려서 참되고도 온전한 자녀가 없는 유대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전하며 알리시고 가르치심으로 많은 제자들을 얻었으니 이를 그리스도께서 "고난 중에 낳은 자녀" 라 말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때에 얻었으며 낳았던 많은 제자들과 사도들은 지금은 죽어서 이 세상에 없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실(임하실) 것을 약속(언약)하셨으며 이제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셨고 그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고난 중에 낳은 자녀" 를 온전히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루시는 때는 실질적으로 세상 끝, 마지막 때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이사야 26장17~18절에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 앞에서 그와 같으니이다.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또는 그리스도 앞에서 열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짖으며 외치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이르게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원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뜻과 마음을 헤아려 이를 지켜 행하여야 하리니 이를 앞서서 본으로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요 그 보이신 교훈의 본(로마서 6장17절)은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율)법을 지켜 행하시려 마음에 있는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부단히 애쓰고 노력(고난)하셨으며 이로써 죽으셨으니 죽지 않는다면 다시 사는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가장 앞서서 행하여 보여주셨으니 그런즉 "맏아들" 이라 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 본과 자취를 좇아 행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바람을 낳은 것과 같아서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23장4~5절에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가 연애하는 자 곧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 11절에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의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의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의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속하여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의 말씀을 가르치며 양육하여 그 뜻대로 행하게 한 사람들을 뜻하며 그러나 그 전하심과 가르침대로 지켜 행하지 않고 이방족속과 더불어 연애하며 행음하였으니 행음하였다는 것은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을 외치며 부르짖으면서 행실은 그 이방족속이 믿으며 섬기는 이방신의 가르침을 좇아서 행하는 것을 의미하니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사로잡혀 그들의 포로(종,노예)됨과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의 행음함을 보고 행실을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음하고 간음함이 더 심하여 부패하고 바벨론에 사로잡히고 에워싸여서 그들의 포로(종,노예)가 되었던 것을 우리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본 바요 아는 바이니 이는 그져 역사적 지식에 불과하고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와 교훈의 말씀으로써 우리는 이에 비추어 무엇에 사로잡혀 있으며 어떤 것에 에워싸여서 "간음하지 말라." 하신 십계명의 말씀을 등 뒤로 던져버리고 행음하며 간음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리니 만일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그 이름을 부르짖으며 외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낳아주신 자녀(자식)라 말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교훈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었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장5절에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

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하는 것처럼 이 시편(2편7절)의 말씀은 천사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사무엘하(7장14절)에 기록하고 있는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하나님께 아들이 되리라." 하신 그리스도를 말하고자 하여 기록하여 주신 말씀이니 천사들은 구원 얻을 후사 곧 아들들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부리시기 위하여 만드신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며 더불어서 맏아들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게 될, 낳게 될 많은 아들(히브리서 2장10절) 또한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진리의 말씀 그 교훈의 말씀의 가르침대로, 보이신 본과 자취대로 지켜 행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첫 열매로 낳아져야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로써 속한 자로써 낳음을 입은 참되고도 온전한 "많은 아들(아들들)" 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