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세기 1장6~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 에서 "물" 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사람은 보이는 세상을 사람의 눈으로 즉 육안(肉眼)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줄 아는 마음의 눈 즉 영안(靈眼)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로마서 1장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靈)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하시려고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들어, 빗대어서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 성경 66권이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도루마무 도루마무~ " 하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육안으로 보이는 세상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부터는 영안(靈眼)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 곧 마음의 세계를 보시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오늘 본문의 말씀에 물이 있어서 그 물 가운데 궁창 곧 하늘을 두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었으며 궁창 아래에 있는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라 칭하셨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궁창의 위의 물도 "바다" 라 하셨으니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먼저 궁창 위의 물에 관해서는 계시록에 기록하고 있으니 계시록 4장1~2절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 하고 쓰고 있듯이 궁창 곧 하늘 위의 물은 "유리 바다" 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오늘 이 "물" 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계시록 21장6절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계시록 22장17절에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값없이 주고자 하시는 그 "생명수 샘물" 이 바로 궁창 곧 하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 의 물이며 이를 마시라는 것으로써 육적으로도 샘물은 산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산을 계시록 14장에서 "시온산" 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물은 우리의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해준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수 샘물은 육신이 아닌 영혼의 갈함(목마름)을 해결해줌과 동시에 마음에 죄와 악으로 인하여 더럽고 추하여진 것을 씻어 깨끗케 하는 "세례" 를 의미하며 이러한 이론과 사상과 이념을 기록하며 담고 있는 글이 바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런즉 세상의 그 어떤 텍스트와는 달라서 생명을 주고자, 구원에 이르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께서도 사람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보좌 앞 궁창 곧 하늘의 위의 물을 값없이 주시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12~14절에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야곱 때부터 먹어왔던 물은 모세의 율법이며 율법은 갈라디아서 3장22절에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 하는 것처럼 여기에서 "성경" 이라 하시는 것은 22절 앞 구절들을 읽어보시면 "율법" 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율법의 이론(사상,이념)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다고 하는 것은 사람마다, 저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율법을 거울로 삼아서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 많고 오류 있는 것들을 고치며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타인에게 눈총을 주면서 정죄하기 바빴고 판단(비난,비방,비판)하기 바빴으며 정죄하고 판단하는 방법은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 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것이니 아직도 지금도 이렇게 행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며 이것이 지금까지 먹고 마시던 야곱의 우물물이니 이를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서로 사랑하라." 하신 완전한 율법으로 행하는 것이 생명수 샘물을 먹고 마시는 것이며 이를 지켜 행하는 자라야 시온산에 있는 것이며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궁창 위의 물 곧 유리 바다 물로써 그리스도께는 하늘 위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의 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와서 마시라고 하신 것이며 그 생명수 샘물을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기존에 먹고 마시던 야곱의 우물물 곧 율법대로 행하던 행실을 고치려고 애쓰는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 을 겪어야 고쳐 행할 수 있으며 이를 본보기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회당에서, 감람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하고 알리신 것이며 또한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셨으니 비로소 "십자가의 죽으심" 으로 생명수 샘물,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것이며 그러나 온전히 이루었다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7장26~27절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인자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신 것은 노아의 때에 그들이 먹고 마셨던 "물" 은 과연 궁창 위의 물일까 궁창 아래의 물이었을? 하는 것으로써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며 우리의 영혼을 살릴 수 없는 궁창 아래, 천하의 물 곧 그러한 텍스트(사상,이념,이론), 그러한 정보의 바다, 그러한 정보의 홍수로는 우리로 하나님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으니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있는 죄와 악을 씻을 수 없는 물이기 때문이며 죄와 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 완전한 율법 곧 궁창 위의 물을 먹고 마셔야 하며 이를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기존에 행하여 왔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을 기반으로 한 정욕 곧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던 죄와 악을 버리기 위한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