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한복음 10장2~3절에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에서 "문(門)"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집이 되었건 성전이 되었건 모든 건물에는 들어가는 "문" 이 있고 또한 모든 "문" 에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 가 있기 마련이며 그 집 주인이 아니고서야 "문지기" 라 할 수 없으니 그런즉 우리 사람을 "양" 이라 빗대어 비유한다면 그 양의 우리를 만들어 주신 것은 하나님이므로 "문지기" 가 되시며 문지기는 아무에게나 그 문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문으로 들어간다." 는 것은 양의 목자임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써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나 그 문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도 아니요 아무나 양의 목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계시록 21장2절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 22절에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하시는 것처럼 "양의 문" 의 진짜 참 뜻, 참 형상은 하나님 나라 천국의 하나님 보좌 즉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 이며 이는 사람의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는 영(靈) 곧 "성령(聖靈)" 으로써 보이지 않는 "영(靈)" 을 "말씀" 으로 보여 주셨으며.....
그러나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서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고 배우고 전도하는 곳이라고 하여서 모두가 하늘에서 내려 온 "천국의 문" 즉 "양의 문" 이라 말할 수 없으니 마태복음 19장16~17절에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하시면서 24절에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양의 문" 곧 "천국의 문" 을 열어주신 이유는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며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며 악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썩고 죽는 "사망(고린도전서 15장56절)의 쇠사슬" 에 얽매이고 져서 굴복하여 살아가고 있고 이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시한부 생명 곧 "죽은 자(계시록 3장1절)" 이므로 거기에서 자유 곧 썩지 않고 죽지 않는 항상 있는, 변하지 않는 "생명" 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며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해놓은 "문" 곧 "천국의 문" 으로 들어가야 하리니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오직 "계명들을 지키라." 하시는 것처럼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장사가 잘 되게 해달라.", "자녀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달라.", "좋은 집에 살게 해달라.", "성공하게 해달라." 하는 기도에 응답받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더는 죄와 악에 대하여 엇나가지 않도록, 막나가지 않도록 통제하기 위하여 "율법" 이라는 이름으로 계명 곧 "십 계명" 을 주어서 지켜 행하게 하려고 주신 것으로써 그 중에 최고한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인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 참 형상의 "영(靈)" 곧 "성령(聖靈)" 으로써 그 하나님의 신(이사야 61장1절)과 영(누가복음 4장18절)이 임하여 오신 것이 "그리스도" 이시며 그런즉 그리스도께서 전하고자 알리고자 하신 "아름다운 소식" 은 갇히고 사로잡혀서 매여 있는 죄와 악으로부터 풀어주고 자유케 하는 복음을 가르치신 것이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죄와 악에서 벗어나고 이겨내는 방법을 본보기로 보이신 것이 십자가의 고난으로써 고난이 없이는 절대로 계명대로 순종하거나 지켜 행할 수 없으며 그 순종함이 사람으로 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신 "구원의 근원" 즉 "양의 목자" 로서 "양의 문(요한복음 10장7~9절)" 곧 "천국의 문" 이 되신 것이며 또한 양의 목자로서 양 같은 우리들을 그 양의 문 곧 "천국의 문" 으로 들어가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비록 4복음서에서 액면(額面)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지만 그 죽으심의 참 형상은 죄에 대하여 죽으심(로마서 6장10절)이요 우리 또한 죄에 대하여 죽게 하시려고(베드로전서 2장24절) 본보기를 보고 좇아오게 하시려 함이 목적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3장23~24절에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구원을 얻는 "양의 문" 곧 "천국의 문" 은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지켜 행할 줄 아는 자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문" 이며 서로가 서로를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며 관용으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던 죄와 악에서 벗어나고 이겨내야만 하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좁은 문"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이며 하지만 이는 어려운 것도 무거운 것(요한일서 5장3절)도 아니라고 하셨으니 다만 절제(고린도전서 9장25절)하고 제어(베드로전서 2장11절)하고 다스리려는(창세기 4장7절) 노력만 필요한 뿐이며 생명을 주시는 "천국의 문" 앞에서 이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이며 그 길을 보여 주시려고 그 음성을 들려 주시려고 양의 문에서 양의 목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임음 잊지 마셨으면 한다.